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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의 일기] 방향성을 잃은 각오

일상

by 엘빌스 2014. 3. 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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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에게 끊임없는 성찰의 눈길을 던지는 것, 자신을 정신적인 무위와 혐오할 만한 둔감 속에 방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너는 지금 어떠한 일의 와중에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이며 또 그러한 네가 현재에게 지불해야 할 것은 어떤 것들인가에 대해 항상 눈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체의 잡념은 버릴 것이다. 상상력의 과도한 발동은 억제할 일이다. 음과 색에 대한 지나친 민감을 경계할 것이다. 언어와 그것의 독특한 설득 형식에는 완강할 것이다. 감정의 분별없는 희롱, 특히 그것의 왜곡이나 과장은 이제 마땅히 경멸할 일이다…….'

 

'시계의 초심 소리를 듣는 데 소홀하지 말아라. 지금 그 한순간 순간이 사라져 이제 다시는 너에게 돌아올 곳 없는 곳으로 가버리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라. 한번 흘러가버린 강물을 뒤따라 잡을 수 없듯이 사람은 아무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날 수 없다. 더구나 너는 이제 더 이상 그 초침 소리에 관대할 수 없으니, 허여된 최대치는 이미 낭비되고 말았으니.'

 

'너는 말이다, 한번쯤 그 긴 혀를 뽑힐 날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 그 실천은 엉망이다. 오늘도 너는 열여섯 시간분의 계획을 세워놓고 겨우 열 시간분을 채우는 데 그쳤다. 쓰잘 것 없는 호승심(好勝心)에 충동되어(바둑을 말함인 듯.) 여섯 시간을 낭비하였다.

 

이제 너를 위해 주문을 건다. 남은 날 중에서 단 하루라도 그 계획량을 채우지 않거든 너는 이 시험에서 떨어져라. 하늘이 있다면 그 하늘이 도와 반드시 떨어져라. 그리하여 주정뱅이 떠돌이로 낯선 길바닥에서 죽든 일찍감치 독약을 마시든 하라.'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1부 하구(河口)

 

 

내가 이 글을 읽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어떤 생각보다 나도 모르게 천천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내가 보였다. 피상적으로 내가 태만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근본 원인을 알지 못한채 역시 피상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서서히 공부 시간이 떨어지더니 이제는 하루 이틀 안 하는 것도 우습게 되었다. 열심히 집중하던 인터넷 강의는 이제 색깔이 변하며 파동이 전달되는 어떤 것에 불과하게 되었다. 위기 의식을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나, 책상 앞에서 쉽게 사라지고야 마는 그런 형태의 것이었다.

 

변화를 꾀해보자고 수면 시간과 신체적 활동을 개선하기 위해 간단하지만 실천은 어려운 그런 계획을 세웠다. 물론 좋다. 그러나 과연 이게 바닥으로 치달은 내 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었을까? 잠깐이나마 책상에 앉아본 오늘의 경험에 미루어 보았을 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글로 돌아가본다. 젊은 날의 초상 중 '일기' 부분이다. 환경이 다르지만 대입이라는 목표는 같다. 철저한 자기 관리, 공부를 위해 몸부림쳤던 그 날이 그대로 묻어나는 표현들이다. 하나 하나 정말 공감되는 내용 뿐이다. 누구나 공부 앞에서는 비슷한가보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결국 소위 '승자'들은 이것들은 결국 견디었다는 말이다. 쉽게 무너져내리고 있는 누군가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그 자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간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극한의 자기 절제와 노력. 조금 황당하기도 하지만, 나는 대학 간판보다 나태하게 보냈던 지난 시간을 후회하며 나를 바꾸기 위해서, 지난 시간을 되갚기 위해서 재수를 그것도 독학 재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다시 말해 수험 생활 동안 견디기 힘든 인고의 시간을 기어코 견뎌내어 그 값진 경험을 평생 들고다닐 수 있도록 하자는게 내 궁극적인 목표였다. 물론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목표이다. 다만 대학은 그에 상응하는 만큼 따라오리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현재 내 모습은 고통과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회피하기 급급한 모습일 뿐이다. 고통을 견디자며 시작해놓고 고통이 무서워서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시간은 무얼위해 존재하게 된 것인가? 간단하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다. 목적없이 흐름에 떠밀려갈 뿐이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책을 보고 있는 내가 대견스러울 따름이다.

 

미쳤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결의에 찬 각오는 어느새 옛 습관과 자기합리화에 잡아먹혀있었다. 그럼에도 시나브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모르고 있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다. 조금 공부해서 명문 대학에 간 사례들은 잊어버리자. 성공한 사람의 과정은 매우 쓰지만, 그 결과는 매우 달다. 그 사람이 '조금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거두기 위해 그 때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알 수 있나? 앞뒤 다 잘린 달콤한 결과따위에 현혹되어 스스로를 망칠 뿐이다. 잃어버린 방향 속에 피상적으로 공부하겠다 공부하겠다 이런 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다. 처음 목표 그대로 다시 간다. 극한의 자기 통제와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것. 이것이 앞으로 남은 시간의 존재 이유이다. 일기장 속 '나'가 쓴 말- 한낱 대학입시에 그처럼 무거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경위는 지금으로서는 역시 잘 이해되지 않지만- 내가 충분히 대답했다고 생각한다.

 

남은 날 중에서 단 하루라도 그 계획량을 채우지 않거든 너는 이 시험에서 떨어져라. 하늘이 있다면 그 하늘이 도와 반드시 떨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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